제트족(Jet set)은 1950년대 말 제트기가 발명되었을 때, 이를 타고 세계 각국을 유람 다니던 부유층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1949년에 등장하여 '카페 사회'를 대체했다. 이 단어는 제트기를 타고 한 멋진 장소나 이국적인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생활 방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항공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이 용어는 부분적으로 ‘글리터라티(glitterati)’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이동 수단보다는 유명세에 더 중점을 두고,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이나 파파라치에게 쫓기는 삶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또, 여기서의 set는 '한 패거리, 동아리, 사람들, 사회'란 뜻이다.[1]
정의
[편집]‘제트족(jet set)’라는 말은 ‘촐리 니커보커(Cholly Knickerbocker)’라는 필명으로 가십 칼럼을 썼으며, 패션 디자이너 올레그 카시니의 동생인 《뉴욕 저널-아메리칸(New York Journal-American)》의 기자 이고르 카시니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2][3] 당시에는 ‘뷰티풀 피플(Beautiful People)’이라는 표현도 생겼는데,[4] 오늘날의 ‘글리터라티(glitterati)’와 비슷한 의미였다. 슈퍼모델이나 유명인, 사교계 인사들처럼 외모와 젊음, 매력적인 생활이 부나 사회적 지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대를 가리킨다.
1950년대 제트 여객기 서비스는 처음에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홍보되었지만, 그 도입은 결국 항공 여행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오늘날에도 ‘제트족’라는 표현이 쓰이긴 하지만, 제트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을 뜻하던 본래의 의미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5]
역사
[편집]영국의 국제 항공사 BOAC는 1952년 5월 2일, 드 해빌랜드 코멧을 이용해 세계 최초의 정기 상업 제트 여객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러나 1953년부터 1954년 사이에 잇따른 사고가 발생한 뒤, 1958년에 코멧 4가 도입되었다. 같은 해 10월부터 런던과 뉴욕을 잇는 전형적인 ‘제트족’ 노선에서 첫 성공적인 운항이 이루어졌다. 이어 팬암도 보잉 707로 1958년 10월 26일 뉴욕과 파리를 잇는 첫 정기 운항을 시작했다.[6]
전형적인 제트족 노선에 포함된 다른 도시로는 호놀룰루, 멕시코시티,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리우데자네이루, 아테네, 마드리드, 파리, 로마, 빈, 방콕, 홍콩, 마닐라, 푼타델에스테, 도쿄 등이 있었다. 아카풀코나 나소처럼 헌팅턴 하트퍼드가 1962년에 새로 개장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가 있는 휴양지는 버뮤다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트족 휴양지로 떠올랐다. 한편 칸, 카프리섬, 생트로페, 포르토피노 등 프랑스와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해안 도시들도 제트족 여행지 목록에 포함되었다.[7] 1974년 무렵에는 미코노스섬 같은 그리스 섬들도 이 노선에 추가되었으며, 이후 스페인의 코스타델솔에 있는 마르베야 같은 지역도 비슷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엘리트적이고 자유분방한 집단의 초기 구성원들은 대중의 관심을 꺼리지 않고 식당이나 나이트클럽처럼 일부 공개적인 장소에서 파티를 즐기던 사교계 명사들로, 그곳에서 제트족 현상인 파파라치가 그들을 촬영했다. 이들은 주말을 파리에서 보내거나 단지 파티를 위해 로마로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던 첫 세대였다. 제트족의 삶은 대중문화에서도 찬미되었는데, 예를 들어 페데리코 펠리니는 영화 달콤한 인생(1960)에서 그들의 생활상을 담아냈고, 1950년대의 많은 영화와 음반들은 로마에서의 허니문(1956, 캐피톨 레코드)처럼 신혼여행이나 휴가를 위해 해외로 떠나는 낭만을 홍보했다.[8]
1962년 봄, 보그가 ‘뷰티풀 피플’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내면서 제트족와 함께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처음에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재클린 케네디 여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교계 인사들을 가리켰다. 1964년 2월 15일자 보그 독자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한동안 두 표현은 함께 쓰였으며, 1970년 작가이자 사회 평론가인 클리블랜드 에이머리는 “현재의 경제 상황이 뷰티풀 피플과 제트족를 위협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4]
‘제트족’라는 표현이 세련된 의미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징후는 1974년 컨트리 곡 "(We're Not) The Jet Set"에서 나타난다. 이 곡에서 조지 존스와 태미 와이넷은 화려한 ‘제트족’ 생활과 달리 자신들은 “오래된 쉐보레족”라고 노래한다.[9]
1976년, 제트족는 처음으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타게 되었다. 정기 운항은 1976년 1월 21일 런던-바레인 석유업계 경영진 노선과 파리-리우데자네이루(다카르 경유)라는 전형적인 제트족 노선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 11월부터 콩코드는 런던이나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기존 제트족 목적지 간 운항을 시작했으며, 첫 운항 승객 명단은 가십 칼럼 소재가 되었다. 콩코드는 제트족의 위상을 다시 높였는데, 노바 회고 특별 프로그램 ‘초음속의 꿈’에 따르면 “록 스타에서 왕족에 이르기까지, 콩코드는 제트족가 이동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10] 그러나 콩코드는 소닉붐, 이로 인한 제한된 전 세계 비행 허가, 그리고 막대한 연료 소비 때문에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2000년 참혹한 추락 사고 이후, 이 항공기는 2003년에 퇴역했다. 한편, 약 400명[11]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보잉 747은 제트 시대가 이미 가져온 사회적 변화를 더욱 민주화하는 역할을 한 항공기였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왜 부유층을 제트족이라고 할까?”. 2025년 10월 26일에 확인함.
- ↑ Vallance, Tom (2006년 3월 20일). “Oleg Cassini - Obituaries”. 《인디펜던트》. 2008년 4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Oleg Cassini] and his younger brother Igor (who became the Hearst newspaper gossip columnist 'Cholly Knickerbocker' and coined the phrase 'jet set')…
- ↑ “Jet set - Definition, Meaning & Synonyms” (영어). 《Vocabulary.com》. 2025년 6월 28일에 확인함.
- 1 2 Vogue 15 February 1964:49 and The Ladies Home Journal September 1970:81, noted Barry Popik, "Beautiful people".
- ↑ Niemietz, Kristian (2013년 12월 19일). “In praise of cheap flights”. 《Spiked》. 2018년 9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1월 20일에 확인함.
...air travel has been transformed from a luxury good to a mass-market product.
- ↑ Swopes, Bryan (2022년 10월 26일). “26 October 1958”. 《This Day in Aviation》. 2023년 9월 12일에 확인함.
- ↑ "Portofino has long been fashionable with what we once called 'the jet set'." “History and tourist information on Liguria, Italy”. 2007년 4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4월 27일에 확인함.
- ↑ Borgerson, Janet (2017). 《Designed for hi-fi living: the vinyl LP in midcentury America》. Schroeder, Jonathan E., 1962-. Cambridge, Massachusetts: MIT Press. ISBN 978-0-262-03623-8. OCLC 958205262.
- ↑ Hackett, Vernell (2012년 6월 8일). “(We're Not) The Jet Set”. 《Rolling Stone》. 2024년 4월 30일에 확인함.
- ↑ On-line NOVA transcript (18 January 2005)
- ↑ 1970년에 도입된 747-100은 366명; 1983년 747-300은 400명; 2010년 747-8은 467명; 참조: 보잉 747 사양
더 읽어보기
[편집]- Amory, Cleveland (1960). 《Who Killed Society?》. New York: Harper. OCLC 419736.
- Wilkes, Roger (2003). 《Scandal: a Scurrilous History of Gossip》. London: Atlantic. ISBN 978-1-903809-82-2.
외부 링크
[편집]- “The Opening of the Commercial Jet Era”. 2006년 3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